18. 장판에서의 패주 – 유비가 조조의 추격에 도망치며 민중 대이동.
삼국지 연의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장판파 전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유비가 조조의 대군에 쫓겨 수십만 명의 백성을 이끌고 필사의 도주를 감행하는 이 이야기는, 유비의 인간적인 면모와 위기 대처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백성을 향한 그의 진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조조, 형주를 덮치다
조조는 형주를 장악하기 위해 대대적인 남하를 시작합니다. 당시 유비는 신야에 머물며 백성들을 보살피고 있었는데, 조조의 군세가 워낙 거대하여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유비는 고심 끝에 백성들을 이끌고 강릉으로 후퇴하기로 결정합니다. 강릉은 수륙 교통의 요지로, 유비에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문제는 유비를 따르는 백성의 수가 엄청났다는 점입니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은 느린 속도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조조군의 추격을 더욱 쉽게 만들었습니다. 유비는 백성들을 버리고 홀로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유비를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고, 유비 역시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고자 했습니다.
장판, 비극의 시작
유비의 군대는 장판에 이르렀을 때 조조의 정예 기병 부대와 마주치게 됩니다. 조조는 유비가 백성들을 이끌고 이동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기병대를 급파하여 유비를 추격한 것입니다. 장판은 평야 지대로, 기병에게 매우 유리한 지형이었습니다. 유비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졌고, 수많은 백성들이 조조군의 칼날 아래 쓰러졌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유비는 가족들과도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조조군은 맹렬하게 추격해왔고, 유비는 간신히 몸을 피하며 퇴각했습니다. 그의 곁에는 조운, 장비 등 극소수의 장수만이 남아있었습니다. 특히 조운은 혼란 속에서 유비의 아들 유선을 구하기 위해 적진을 누비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조운의 용맹함은 훗날 유비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는 조운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장비, 홀로 강을 막아서다
유비가 장판에서 패주하는 동안, 장비는 20여 명의 기병만을 이끌고 장판교에 남아 조조군을 막아섰습니다. 장판교는 좁은 다리였기 때문에, 장비는 혼자서도 충분히 적들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리 위에 버티고 서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나를 막겠느냐!"
장비의 우렁찬 기세에 조조군은 감히 다리 위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조조는 장비의 용맹함에 감탄하면서도, 혹시 매복이라도 있을까 염려하여 쉽게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장비는 이 기회를 틈타 다리를 끊어버리고 유비에게 합류했습니다. 장비의 활약 덕분에 유비는 조조군의 추격을 어느 정도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민중 대이동의 고통
장판에서의 패주는 유비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백성들 역시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쓰러져 갔습니다. 유비는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 깊이 괴로워하며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식량까지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노력했습니다.
유비의 진심은 백성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백성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유비를 믿고 따르며, 강릉으로 향하는 여정을 계속했습니다. 비록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이었지만, 그들은 유비와 함께라면 희망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손권과의 동맹, 반전의 계기
유비는 강릉으로 향하는 도중, 제갈량에게 손권과의 동맹을 제안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조조는 형주를 장악한 후, 곧바로 강동을 공격할 기세였습니다. 손권 역시 조조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제갈량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결국 유비와 손권은 동맹을 맺고 조조에 맞서 싸우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훗날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격파하고 삼국 정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마무리하며
장판에서의 패주는 유비에게 큰 시련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리더십과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조조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는 과정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었지만, 유비는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유비의 이러한 헌신은 백성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는 민심을 얻어 훗날 촉한을 건국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장판에서의 패주는 단순히 패배의 역사가 아니라, 유비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위대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