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관우의 패망 – 손권의 배신으로 포로가 되어 참수.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삼국시대, 그 중에서도 충의의 상징이자 무용의 화신으로 추앙받던 관우의 최후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그의 패망은 단순한 전투의 패배를 넘어,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정치적 암투가 빚어낸 비극적인 결말이었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촉한의 기둥이자 유비의 오른팔이었던 관우, 그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형주 공방전의 시작

관우는 유비의 명을 받아 형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형주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기에, 위나라와 오나라 모두 호시탐탐 그 땅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관우는 번성을 공격하며 위나라의 조인과 맞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맹공을 퍼부으며 조인을 곤경에 빠뜨렸지만, 위나라의 원군이 도착하면서 전황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때마침 형주에는 큰 비가 쏟아져 번성 주변 지역이 물에 잠기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관우는 이를 틈타 수공을 감행, 조인을 완전히 몰아넣고 위나라 군사들을 궤멸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관우의 용맹은 천하에 다시 한번 떨쳐졌고, 그는 일약 영웅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손권의 배신과 형주의 함락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 관우에게는 예상치 못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오나라의 손권이었습니다. 유비와 손권은 과거 동맹을 맺고 조조에 맞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형주를 둘러싼 갈등은 극에 달했고, 손권은 은밀히 위나라와 손을 잡고 형주를 공격할 계획을 세웁니다.
손권은 여몽을 보내 형주를 기습하게 합니다. 여몽은 뛰어난 지략가였고, 그는 관우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계략을 펼칩니다. 우선, 자신은 병을 핑계로 은퇴하고 젊고 유능한 육손을 대신 보내 관우를 안심시킵니다. 육손은 관우에게 연이어 편지를 보내며 극도로 낮추는 태도를 보였고, 관우는 이에 완전히 속아 넘어갑니다.
관우는 육손을 얕잡아보고 형주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합니다. 대부분의 병력을 번성으로 보내 조조와 싸우는 데 집중했고, 형주에는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었습니다. 바로 이 틈을 타 여몽은 은밀히 군사를 이끌고 형주로 진격합니다.
여몽은 변장술을 사용하여 관우의 감시망을 피하고, 형주 성내에 잠입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관우의 부하들을 매수하여 성문을 열게 하고, 순식간에 형주를 점령합니다. 형주를 지키던 관우의 가족들과 백성들은 오나라 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관우의 최후

형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관우는 크게 분노하며 급히 회군합니다. 그러나 이미 전세는 완전히 기울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사방에서 오나라 군의 공격이 쏟아졌고, 관우는 퇴각을 거듭하며 점점 궁지에 몰립니다.
결국, 관우는 맥성이라는 작은 성에 갇히게 됩니다. 그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오나라 군의 매복에 걸려 포로로 잡히고 맙니다. 손권은 관우에게 항복을 권유했지만, 관우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충절을 지켰습니다.
손권은 결국 관우를 참수하기로 결정합니다. 관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의 용맹과 충의는 후세에 길이 남았지만, 그의 비극적인 최후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관우의 죽음은 촉한에게 큰 타격이었습니다.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대규모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공격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관우의 패망은 촉한의 국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삼국시대의 역사를 바꿔놓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마무리하며
관우의 이야기는 단순히 영웅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 배신, 그리고 정치적 암투가 빚어낸 비극적인 드라마입니다. 그의 충의와 용맹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지만, 그의 패망은 우리에게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권력의 무상함을 깨닫게 해주는 교훈으로 남습니다. 관우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연 진정한 영웅은 무엇이며, 인간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그의 삶과 죽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