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사마씨의 집권 – 사마의, 사마소, 사마염으로 이어짐.
삼국지의 격동적인 시대, 영웅들의 흥망성쇠 속에서 조용히 칼날을 갈며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가문이 있었으니, 바로 사마씨 일가입니다. 위나라를 쥐락펴락하며 결국 진나라를 건국하는 데 성공한 사마의, 사마소, 사마염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권력 찬탈 과정은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그 음모와 술수, 그리고 냉혹한 결단으로 점철된 사마씨 집권의 역사를 상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사마의: 은둔과 기회를 엿보다

사마의는 뛰어난 재능과 야망을 품었지만, 조조의 의심을 받아 쉽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병을 핑계 삼아 은둔하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조조가 죽고 조비가 즉위하면서 비로소 사마의는 본격적으로 중용되기 시작합니다. 뛰어난 지략과 냉철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그는 위나라의 군사적 요충지에서 공을 세우며 점차 권력의 핵심으로 진입합니다.
그러나 사마의의 야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조비 사후 어린 조예가 즉위하자, 사마의는 조상과 함께 정권을 공동으로 맡게 됩니다. 겉으로는 조정을 보필하는 듯했지만, 그는 뒤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조상은 사마의를 견제하려 했지만, 노련한 사마의의 계략에 번번이 휘말리며 오히려 자신의 입지를 좁혀갈 뿐이었습니다.
사마소: 숙청의 칼날을 휘두르다

조예가 죽고 어린 조방이 즉위하자, 조상과 사마의의 권력 다툼은 극에 달했습니다. 조상은 사마의를 견제하기 위해 군권을 장악하려 했지만, 사마의는 병을 핑계로 은퇴하며 시간을 벌었습니다. 조상이 방심한 틈을 타 사마의는 숨겨둔 군사를 일으켜 낙양을 장악하고 조상 일당을 숙청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평릉 사변’입니다.
고평릉 사변 이후, 사마의는 위나라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합니다. 그의 아들 사마소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더욱 강력한 권력을 휘두릅니다. 사마소는 반대파를 철저히 숙청하고,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며 위나라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습니다. 심지어 그는 위나라 황제를 시해하고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사마소의 권력은 이미 위나라 황제를 능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사마염: 마침내 제위에 오르다

사마소의 뒤를 이은 사마염은 아버지의 기반 위에 더욱 확고한 권력을 구축합니다. 그는 오랜 준비 끝에 위나라 황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진나라를 건국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로써 삼국 시대의 한 축이었던 위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사마씨의 진나라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게 됩니다.
사마염은 오나라를 정벌하여 삼국을 통일하는 데 성공하며, 오랜 분열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제국을 건설합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사마염 사후, 진나라는 내부 분열과 혼란에 빠지며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사마씨 집권의 의미
사마씨의 집권은 삼국 시대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들의 권력 찬탈 과정은 권모술수와 냉혹한 결단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동시에 뛰어난 지략과 정치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마씨의 성공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철저하게 준비하고 기회를 포착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사마씨의 집권은 동시에 삼국 시대의 영웅들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귀족 세력이 등장하는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권력 독점과 부패는 결국 진나라 멸망의 원인이 되었으며, 이후 중국 역사는 다시 혼란과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마무리하며, 사마씨의 집권은 삼국지의 역사 속에서 단순한 권력 찬탈을 넘어, 시대의 변화와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들의 흥망성쇠는 우리에게 권력의 속성과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