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 – 다샤 키퍼

삶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
“너무나 인간적이고 깊은 통찰력을 지녔기에,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찬사처럼, 알츠하이머 환자와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의 고통과 사랑을 심도 있게 다룬 책이 있습니다. 바로 임상심리학자이자 상담가인 다샤 키퍼의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입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텔레그래프〉, BBC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이들의 세계와, 그들과 함께 미로를 걷는 이들의 삶을 탐험하는 놀라운 탐구서,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기억의 미로를 헤매는 사람들, 그들의 세계
결혼한 사실을 잊은 남편, 책의 저자와 대화하는 아내, 매일을 일요일로 착각하고 교회에 가는 남자… 이들은 모두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말 그대로 ‘기억의 미로를 헤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중요한 기억을 잃어가지만, 자신의 깊숙한 정체성이나 오래된 습관 속에서 맴돕니다. 예를 들어, 독서를 즐기던 아내는 저자의 사진을 보며 그와 대화하고, 신심이 깊던 남편은 매일 교회에 가려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불과 몇 분 전 자신이 했던 행동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전혀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이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은 어떠할까요? 다샤 키퍼는 10여 년간 수많은 알츠하이머 환자와 보호자들을 상담하며 그들의 고통과 갈등, 그리고 사랑을 관찰했습니다. 이 책은 그중 대표적인 11가지 사례를 통해 보호자들이 겪는 심리적 딜레마를 과학적 지식과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풀어냅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은 키퍼는 질병 자체보다 ‘인간 그 자체’를 깊이 이해하려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복잡한 내면을 탐구합니다.
뇌과학으로 들여다본 환자와 보호자의 역학 관계
알츠하이머 환자는 단순히 기억을 잃는 것을 넘어,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저하되는 등 복합적인 인지 저하 증상을 보입니다. 이들은 가족을 알아보기도 하다가 금세 잊어버리고, 갑자기 화를 내다가도 차분해지는 등 예측 불가능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들이 환자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억을 잃어도 그들의 기질, 선호, 사교성 등 무의식적 성격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보호자들은 혼란과 좌절을 느낍니다. 환자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아도, 이중적인 모습에 갈등하고 결국 자신을 책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의 일화들은 이러한 환자-보호자 관계의 복잡성을 잘 보여줍니다. 1장 「브롱크스의 보르헤스」에서는 아들이 전선을 만지려는 아버지에게 위험하다고 경고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언제 그랬냐며 부정합니다. 아들은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실랑이를 벌입니다. 6장 「매일이 일요일이라면」에서는 도둑이 집을 감시한다고 믿어 몇 달째 창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참다못해 “당신은 치매야!”라고 소리치고는 이내 후회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키퍼는 이러한 보호자들의 ‘비합리적’ 행동이 사실은 ‘건강한 뇌’의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의 뇌는 타인에게 의사와 자유의지가 있다고 직관적으로 인식하며, 타인의 기억에 연속성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렇기에 보호자들은 환자가 고집을 부린다고 착각하거나, 그들의 행동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환자의 기억 시스템에는 연속성이 없고, 그들의 기억은 조각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보호자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저자는 우리 뇌의 의지와 자제력은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보호자들이 환자의 모든 행동을 수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보호자들 역시 자신도 모르게 ‘광기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상적인 뇌’가 ‘병에 걸린 뇌’와 뒤섞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보호자들은 자신의 의지를 탓하며 환자를 더 다정하게 돌봤어야 했다고 자책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보호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뇌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이 이 병에 대처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가 바란 것은 보호자들이 겪는 어려움, 특히 자책, 겉보기에 비합리적인 행동, 그에 따르는 후회처럼 그들이 자초한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이 반응들이 거의 예외 없이 관찰되었기 때문에 나는 조바심과 좌절감을 넘어선 무언가가 작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보호자의 이야기를 듣고 뇌에 대한 연구를 읽을수록, ‘건강한’ 뇌에 새겨진 편향과 성향이 인지 손상을 입은 뇌를 대하기에 여러 면에서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커졌다. 이런 신경학적 제약이 존재하므로 나는 돌봄을 고역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성격 결함이 아니라 뇌의 타고난 작동 방식임을 보호자들이 이해하길 바랐다. 그러고 나니 환자를 용서하라는 조언을 노상 듣는 보호자들이 스스로도 용서하길 자연스레 바라게 되었다. _235~236쪽
사랑은 기억의 미로를 헤쳐나가는 힘
뇌의 작동 방식이 돌봄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더라도, 우리의 직관은 환자를 정상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로 이중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이중성이 보호자에게 힘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환자를 오직 이성적으로만 대하고 그들을 그저 증상과 질병으로만 치부한다면, 환자에게서 인간성을 앗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호자에게 환자는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4장 「체호프와 좌뇌 통역사」에 나오는 아내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남편은 아내를 낯선 사람으로 인식하고 매일 밤 집 밖으로 내쫓습니다. 아내는 밤새 추위에 떨다가 남편이 잠들면 집에 들어가는 악몽 같은 밤을 반복합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아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알츠하이머는 지독한 병이고 누구도 걸리지 않길 바라지만, 저 자신에 대해 많은 걸 배웠어요. 제가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저는 생각보다 인내심이 많아요.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사랑이 있다는 걸, 사랑이 떠나버리지 않는다는 걸 배웠어요. 알츠하이머가 사랑을 앗아갈 순 없어요. 그래서 고마워요.” 이처럼 사랑은 고통 속에서도 빛을 발하며, 인간의 강인함을 보여줍니다.
8장 「배후 조종자」에서 어릴 때부터 자신을 키워준 유모 할머니를 돌보는 줄리아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매로 인해 때로는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는 할머니이지만, 동시에 줄리아를 사랑하며 입맞추고 쓰다듬어주는 할머니와 같은 사람입니다. 줄리아에게 할머니는 변함없이 “나만의 작은 만두이자 작은 마시멜로”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환자의 이중성은 우리가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고 더 많은 애정을 표현하게 하는 인간적인 장치로도 작용합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알츠하이머 환자와 보호자
전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 수는 5,500만 명 이상이며, 한국 또한 2026년에는 치매 환자가 약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중대형 도시 전체 인구와 맞먹는 수치입니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의 수는 최소 100만 명에서 최대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호자들은 간병비, 병원비 등 물리적, 시간적 비용뿐만 아니라 심리적 고통이라는 막대한 부담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보호자의 마음이 건강해야 환자를 잘 돌볼 수 있고, 보호자가 무너지지 않아야 가족과 사회 시스템 역시 유지될 수 있습니다.
다샤 키퍼는 이 책을 통해 보호자들 또한 질병과 치열하게 맞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키퍼의 말처럼 우리는 환자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기억의 미로를 여행하는 보호자’들도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보호자들의 슬픔과 분투, 그리고 불굴의 결의에 대해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이 한 가족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사랑과 고뇌, 회복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환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롭게 싸우는 보호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과학적 통찰을 선사하는 이 책은 알츠하이머병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한줄기 희망이자 등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포용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모두에게 꼭 필요한 필독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