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홍식 교수의 ‘정치의 발명’: 2500년 유럽 정치 문법의 대서사시를 읽다
유럽 정치의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여정을 단 한 권의 책으로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조홍식 교수의 신작 『정치의 발명』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부터 현대 유럽연합에 이르기까지 2500년에 걸친 유럽 정치의 흐름을 ‘정치 문법’이라는 독창적인 관점으로 파헤칩니다. 글항아리에서 2025년 출간 예정인 이 책은 단순히 역사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철학과 언어, 제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오늘날의 정치 구조를 형성했는지 깊이 있게 분석하며 비교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엽니다. 서양 정치사의 심층적 이해를 구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역작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사는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할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자유와 평등을 발명한 폴리스의 문법과 그 유산
『정치의 발명』은 유럽 정치의 첫 번째 문법을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찾아냅니다. 폴리스는 단순히 지리적 구역을 넘어선 강력한 시민 공동체로서, 자유의 가치와 법 앞의 평등(이소노미아), 그리고 다수의 지배(민주주의)라는 혁신적인 정치적 가치를 발명했습니다. 특히 정치와 경제 활동을 구분하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수사학을 통한 설득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후대 서양 정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태동하여 말의 향연인 수사학에서 철학으로 발전하며 보편성을 추구했던 폴리스의 정신은 내전(스타시스)과 전쟁(폴레모스)의 위협 속에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발명하며 로마와 르네상스를 거쳐 오늘날까지 그 유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변방의 도시국가들이 남긴 정치 문법은 유럽 문명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고대 로마: 법과 제도의 건축가, 레스 푸블리카와 제국의 그림자
두 번째 정치 문법은 로마의 ‘레스 푸블리카'(공화정)와 ‘임페리움'(제국)에서 발견됩니다. 로마 공화정은 단순히 왕정을 폐지하는 것을 넘어 자유의 탄생과 함께 권력을 나누고 제한하는 정교한 정치 제도를 구축했습니다. 민중의 비토권, 선거 제도, 그리고 무엇보다 법의 지배는 로마 정치의 핵심이었습니다. 또한, 로마의 놀라운 개방성과 융합 정책은 단순한 도시 국가를 넘어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정치의 발명』은 로마를 유럽 정치의 ‘모태’로 설명하며, 도로와 건축을 통해 물리적으로 연결된 세계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고대의 능력주의와 법치 전통을 확립하여 신성로마 제국, 미합중국, 프랑스 공화국 등 후대의 수많은 정치체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드리웠음을 역설합니다. 오늘날까지 로마의 정치적 유산은 다양한 형태로 현대 정치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중세: 예루살렘과 로마가 빚어낸 크리스천돔의 정치적 화학
중세 유럽은 ‘크리스천돔’, 즉 기독교 세계라는 새로운 정치 문법 속에서 예루살렘의 일신교적 가치와 로마의 제도적 유산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시기였습니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품으며 서방의 가톨릭과 동방의 정교로 분화되었고, 황제와 교황이라는 이원적 권력 구도는 서구 법치 전통의 독특한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사랑과 폭력, 그리고 강한 혁명성을 동시에 품었던 기독교는 일부일처제 강화와 개인주의 확산 등을 통해 사회 전체를 통제하고 재구성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종교개혁과 민족주의의 태동, 심지어 공산주의와 기독교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가 남긴 정치적 유산은 현대 사회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책은 조명합니다.
중세 후기: 왕권과 의회가 공존한 킹덤의 시대와 국가의 탄생
중세 후반부에는 프랑스와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킹덤’이라는 정치 문법이 형성됩니다. 비잔티움과 게르만 전통, 외세의 침략 속에서 봉건주의를 거쳐 왕권이 강화되는 한편, ‘왕의 두 신체’ 개념과 의회 제도가 발전하며 왕권과 귀족, 그리고 민중 사이의 독특한 균형을 모색했습니다. 『정치의 발명』은 유럽 킹덤이 가산제와 다원주의를 통해 국가와 사회를 분립시키고 관료 집단을 탄생시켰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사회적 책임 의식을 길러냈다고 분석합니다. 이는 공동체의 의인화를 통해 평등한 국제관계의 토대를 마련하고 근대적인 국가 개념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과정이었으며, 유럽 특유의 다원적 정치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근대: 국가의 완성, 네이션의 발명과 사회 통합의 용광로
17세기 이후 유럽은 ‘킹덤’에서 ‘네이션’, 즉 국민 국가라는 새로운 정치 문법으로 전환합니다.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보듯, 영국, 미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네이션의 부상은 단순히 영토적 통합을 넘어 정치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통합을 이루는 ‘사회 통합의 용광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책은 네이션이 어떻게 고대 아테네의 폴리스와 로마의 레스 푸블리카/임페리움의 유산을 계승하고 변형시켰는지, 그리고 크리스천돔의 보편성과 경쟁과 협력의 국제사회 속에서 킹덤의 전통과 결합하여 현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는지를 다각도로 탐구합니다. 이는 반反네이션 움직임과 함께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국민 국가의 복합적인 모습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하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국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현대: 국경을 넘어선 코스모폴리스, 유럽연합의 새로운 질서
『정치의 발명』의 대미는 현대 유럽연합(EU)에서 구현된 ‘코스모폴리스’라는 새로운 정치 문법으로 장식됩니다. 이는 개별 ‘네이션’들의 협력을 제도화하는 ‘인터내셔널’ 단계를 넘어, 주권을 부분적으로 초월하는 ‘수프라내셔널’ 단계로 나아가며 새로운 정치 단위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무역에서 과학기술, 문화에 이르기까지 정책적 통합을 이루고, 단일 화폐와 유럽 데모스(demos)의 형성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정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EU의 모습은 효율성보다는 설득을, 다수보다는 소수의 원칙을 강조하며 전 세계에 새로운 질서와 문법을 제안합니다. 이는 유럽이 스스로를 ‘새로운 제국’이자 ‘중심에서 주변으로’ 확장하는 코스모폴리탄적 모델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이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미래 정치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중요한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조홍식 교수의 『정치의 발명』은 2500년이라는 방대한 시간을 관통하며 유럽 정치의 핵심적인 ‘문법’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역작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자유와 로마의 법치, 중세 기독교의 보편성, 킹덤의 분립과 네이션의 통합, 그리고 현대 유럽연합의 초국가적 실험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각 시대가 어떻게 독자적인 정치적 발명을 이루어냈고, 그 유산이 어떻게 오늘날 우리 삶과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정치학도뿐만 아니라 서양사, 철학, 국제관계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통찰과 사유의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정치의 발명』을 통해 우리는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더 넓고 깊은 시야를 갖게 될 것이며,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