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위나라의 내분 – 사마씨 가문의 권력 장악.
삼국지 연의는 영웅호걸들의 이야기와 함께 권력 다툼, 배신, 그리고 몰락이라는 인간사의 씁쓸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특히 위나라는 조조의 야망으로 시작되어 조비, 조예를 거치며 한때 천하통일의 가능성을 엿보였지만, 결국 사마씨 가문에 의해 무너지는 비극을 맞이한다. 이 글에서는 위나라 말년, 사마씨 가문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위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는지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조상의 허약한 권력과 사마의의 은둔

조예가 죽고 어린 조방이 즉위하면서 위나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조예는 죽기 전, 조상과 사마의를 공동 섭정으로 임명하여 어린 황제를 보필하게 했다. 하지만 조상은 사마의를 견제하며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사마의를 명예직에 앉히고 군권을 빼앗았으며, 심지어 황제를 데리고 수도 낙양을 비우는 등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했다.
조상의 오만함은 노련한 정치가이자 전략가였던 사마의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사마의는 겉으로는 병을 핑계로 은둔하며 조상에게 안심을 주었지만, 뒤로는 자신의 세력을 은밀히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는 때를 기다리며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고평릉 사변: 사마의의 쿠데타
조상이 황제를 데리고 낙양을 비운 사이, 사마의는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그는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낙양을 장악하고 조상을 역적으로 몰아 처단하기 위한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고평릉 사변’이다.
사마의는 순식간에 낙양의 모든 관문을 장악하고 조상의 일당을 체포한다. 조상은 사마의에게 항복하고 자신의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사마의는 냉정하게 그의 청을 거절하고 조상 일족을 모두 처형한다. 이로써 위나라의 실권은 완전히 사마의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사마씨 가문의 독재와 위나라의 몰락

고평릉 사변 이후, 사마의는 위나라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그는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자신의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며 위나라를 사마씨 가문의 왕국으로 만들어 나갔다. 사마의가 죽은 후에는 그의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가 권력을 이어받아 위나라를 더욱 압박한다.
사마소는 위나라 황제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위나라의 국운은 점점 기울어져 갔고, 백성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사마염의 찬탈과 진나라 건국

결국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은 위나라 마지막 황제 조환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국호를 ‘진(晉)’이라 칭하고 새로운 왕조를 건설한다. 이로써 조조가 세운 위나라는 건국된 지 불과 수십 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위나라의 멸망은 단순히 한 왕조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권력욕에 눈이 먼 자들이 어떻게 국가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사마씨 가문의 권력 장악은 삼국시대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이후 진나라의 통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마무리하며
위나라의 흥망성쇠는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욕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조조의 야망으로 시작된 위나라는 사마씨 가문의 권력 장악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권력의 무상함과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삼국지 속 위나라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력은 칼날과 같아서, 잘못 휘두르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